삶의 모든 시기에서 우리는 배워갑니다. 어릴때는 주어진 원칙들을 교과서로 배우게 되지만, 세상의 지식들은 책에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관계나 삶의 원칙들에 대한 지식들은 주로 경험으로 얻어지며 우리는 교과서적인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세상의 모습을 그려갑니다.
상식의 충돌: 이해관계로 인하여 차이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게 쌓여갑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상식들이 구축되는 방법 또한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지식이 당연하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소하며,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로 이러한 상식의 충돌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입니다. 제 주위에 똑같이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여러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10% 정도는 상식적인 분야에서 극심한 충돌을 목격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하나씩 따져나가보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며, 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에 의해서 몇가지 쟁점이 달라지게 되는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로 무장된 상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세상은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보다 많은 상식들과 지식들을 제가 얻어갈수록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식이 개인들의 이해관계(주로 이익의 여부)에 따라서 판이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 뒤로 저는 살면서 상식들을 지속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과연 나를 행복에 이르게 할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오히려 저의 이해관계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것이 다양한 지식을 쌓는것보다 더 좋을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상식이 된다면, 상식은 더이상 의미있는 공통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의 끝판왕: 정치권력은 행복할까
상식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요? 상호간 이해관계에 따라 상식이 무너진 현상을 보면서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과연 이런 힘을 통해서 행복한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분들과 친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을 얻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보이는 상식이하의 싸움과 다툼들, 서로간을 향한 복수와 비상식적인 절차들, 그리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그다지 행복할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겠지만, 죽음을 앞둔 목전의 나이까지 권력 다툼에 집중하는 분들의 모습이 그저 열정으로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툼을 통해서 얻는 이해관계들이 저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평생 이해관계만 추구하다가 간다면 마지막 순간에 너무나 슬플것 같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없이 순수한 사회의 공동체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분도 어딘가에 있겠지만, 제가 목도한 수많은 이해관계의 관철을 위한 다툼들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뭘 해야 행복할 수 있나: 작은 존재의 허무함
이해관계의 다툼을 제외하고 본다면 과연 뭘해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배워야, 어떤 면을 배우고 다듬어야 행복한 삶은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때 가졌던 확신들이 치기어린 순수함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에게 남은것은 약간의 허무함과 패배주의적 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수많은 혼란으로 뒤덮여 있고, 이대로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을때 막대한 허무함이 저를 덮어 버렸습니다. 그냥 무엇을 해도 큰 의미가 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던, 앞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느꼇던 부조리함은 더 컸기 때문이죠.
어설픈 상식들을 아무리 배워봐야 해결할 수 있는것들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경제적인 부를 확대하는 것밖에 없다고 느꼇을 때 삶은 더 큰 무게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이 거대한 세상의 흐름에서 한개의 먼지정도 되는 무게밖에 가지지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것이죠.
그래서 저는 십수년전보다 자신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것 같은 기세도, 근거없는 자신감도 사라지고 오로지 남은것은 내가 할 수 있는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의구심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한가지 남은것이 있더군요.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그 자체가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죠. SNS에 글을 쓸때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가는 짧은 형태의 글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가 된것 같습니다.
이게 너의 행복이냐고 물어보시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매주 일요일에 글을 쓰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계속 생각나는 내용들을 틈틈이 쌓아두고 막상 글을 쓸떄면 씩씩 거리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주일 중 하루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보냅니다. 제가 쓰는 뉴스레터의 많은 글들은 삶에서 어떻게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나온 내용들이 많은 이유는 제가 실제로 행복을 위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느리지만 길게 가는 뉴스레터로 만들기 위해서 천천히 가고 있습니다. 이제 벌써 36번째 글이라 거의 9개월을 달려온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제 구독자는 500명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크지 않은 구독자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의미가 큽니다. 저의 생각을 일주일에 한번씩 읽어주는 분들이 세상에 500명이나 존재하는 자체로 저에게는 부담이자 힘이 되는것이죠.
저의 목표는 제가 사망하기 전까지 매주 뉴스레터를 깔끔하게 보내는것입니다. 저의 생각의 궤적도 수십년을 지나면서 크게 달라지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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