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요일 저녁의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략 다섯시 정도까지 모든 일정들을 다 끝내고 나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정리하고 다음주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때로는 집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서 루틴을 실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처음보는 커피숍같이 낯선 환경에서 하기도 합니다.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장소는 다르지만, 꽤 일정한 시간에 유사한 방법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목적은 다음날 해야할일을 미리 조금씩 하는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다보면 일이 줄어들기도 하고 갑자기 맞이한 불쾌한 월요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에 급한 마음을 안고 회사를 향하거나, 새벽에 문득 일어나서 해야할일들을 체크했던 기억들은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저는 월요일 아침에 겪는 불안감이 더 커졌습니다. 무엇인가 거대한 조직속에서 굴러가는것처럼 일하는것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내가 해야할일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100% 실패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알아서 뛰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적당히 넘어가고 싶기도 하지만, 모든 일들을 다 위임할 수는 없고 위임을 해도 내 생각만큼 움직여 주지 않을때는 불안감이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안정된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이후로는 늘 불안감에 시달렸던것 같습니다.
이런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는데, 사실 모든 시도들이 다 의미있지는 않았습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했지만, 결국 저에게 남은것들은 몇가지 되지 않습니다. 첫번째는 명상을 하는것이고, 두번째로는 조용히 글을 쓰는 일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의 역할은 완전히 다릅니다. 첫번째 명상은 생각없이 수행해야되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인가를 계획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잡생각을 없애는데 도움을 줍니다. 일종의 터를 닦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명상이 끝나면 어깨가 축 내려가고 마음이 좀 차분해 집니다. 불안감을 이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는 "알수 없는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결국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없어지지만,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 전에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다 냉정하게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이 좀더 오래걸리기 때문입니다. 명상은 이렇게 터를 잡고 앞으로 좀더 계획을 잘 수립하는데 필요한 사전적인 과정입니다.
두번째 과정은 이제 본격적인 정리를 위한 글쓰기 과정입니다. 필요한것은 노트북과 마우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펜과 종이입니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노트북으로 진행되지만, 가끔 요약된 과정을 손으로 그리고, 아이디어를 메모하는데는 종이가 제일 좋습니다. 일정하게 쓰는 다이어리가 있다면, 더 좋고 그렇지 않으면 이면지도 좋습니다. 내가 다음주에 진행해야될 일의 리스트를 종이에 적고, 그 중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과 아직 해결책이 없는 부분을 따로 표시합니다. 일에는 번호를 적는데, 꼭 해결의 우선순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급한것들은 뒤에 적어도 마음속에서는 가장 앞장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씩 문제를 보면서, 현황을 파악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인지하는것이 미래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습니다. 다만, 중요한것은 지나치게 리스크만을 보지 않는것이 중요합니다. 리스크를 없애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명확한 해결방법이 있는 플랜들을 적는것인데, 만약의 만약의 만약까지 적다보면 점차 의미없는 가정들이 쌓여가고 가슴속에는 엄청난 불안감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여기에 도달하면 위의 과정은 모두 의미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마음속의 작은 불확실성이 자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최대한 플랜 B까지만 씁니다. 간략히 제목만을 적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이제 노트북을 켭니다. 리스트를 보면서 다시 하나씩 적으면서 생각한 방법들이 맞는지 추가적으로 검토를 합니다. 하다보면 자신이 오판했거나, 감정에 휘둘려서 적은 내용들도 있고, 때로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을 과대평가한 것들도 들어있습니다. 초안은 반드시 종이에 적고, 리뷰와 구체적인 사항의 기재는 디지털로 합니다. 종이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초안을 만드는것이 좀더 자유롭고, 모니터를 보면 안보이는것들도 새롭게 보이곤합니다. 저는 그래서 철저하게 두가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끝나면 불안감이 사라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직 30% 정도는 남아있습니다. 미래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마지막 과정은 잠에 들기전 스스로의 과거를 회고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말도 안되는 환경하에서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머지 불안감의 30%를 최대한 지우도록 노력합니다.
사실 완벽한 대비라는것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100% 해결을 통해서 불안감을 지울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는것이 제일 중요하긴합니다. 세상은 그러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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