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한국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일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입니다. 처음 인터넷에 노벨 문학상에 대한 기사를 보고 다른 분들이 밝힌 벅찬 감정은 사실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어떤분인지 잘 몰랐던 이유가 큰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슴이 뜨거워지기엔 제 애국심이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아서인지 저는 몇가지 기사를 더 접해보고 한국에 정말 위대한 일이 발생했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상
노벨상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 개인이나 국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수상자를 발표할때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며, 노벨상 수상자가 몇명인지에 따라서 선진국의 위상이 정해지기도 합니다. 기초과학이 발전한 일본에 이미 수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작가에게는 한 작품만으로 상을 얻게 되는 경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주어지는 상이기 떄문에 더 의미가 큰것 같습니다. 꾸준한 작품활동과 지치지 않는 자세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상이기에, 작가로써는 자신의 활동 그 자체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님이 걸어오신 길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수상 이후에 남은 것들: 문과의 전성시대는 올 수 없다
한강 작가님의 수상 이후 서점에서 책이 미친듯이 팔리고 많은 분들이 서점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발표이후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라, 아직까지는 그 여파가 있을듯합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한강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적인 이벤트를 모두들 잊어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문과생들이 받아온 설움을 충분히 달래줄만한 인문학의 전성시대는 절대로 오지 않을것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을 받은것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는 각자의 생각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일이지만, 인문학은 책 몇권 읽는다고 습득되는 학문이 아니기 떄문입니다.
왜 문과는 쇠퇴되고 있는가
일단 저는 문과입니다 .문과인데, 회계사이기 떄문에 그나마 숫자적인 사고를 하는 축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본격적인 티발놈이었을 시기에는 공대를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찐따 같이 생긴 대두여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과에 대한 비하를 많이 들었지만, 결코 문과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엄연히 세상에서 문과의 취업률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사람들이 문과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취업률입니다. 유사한 학교의 공대생, 이과생과 비교하여 문과의 취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즉, 기업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는 직종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연구개발과 제조의 기반이 되는 국가에서는 문과가 갈 수 있는 영업, 마케팅, 백오피스(재무/회계/인사)등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 이과들이 자리를 채워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업에서의 활용도가 낮은것이죠. 학교에서 아무리 인문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다양한 세계들을 받아들이며, 인식을 확대해도 결국 돈이 안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본만능주의가 사라지지 않는한 인문학이 설곳은 없다.
사람들의 일시적인 관심과 관계없이 인문학이 기업에 돈이 된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인문학은 그 자체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특정 세력이 이득을 무한히 쟁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를 통화 주주이익의 극대화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규모를 불려줄 수 있는 지식과 상품일 것입니다 .
그러므로 아무리 한강과 같은 작가님들이 노벨상을 받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한다고 해도 세상을 사는 목적이 오로지 돈을 버는것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인문학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한때 저도 대학에 가서 돈도 안되는 쓸데없는것은 배우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써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여유가 없었고, 사회에서 말했던 경쟁에만 익숙해진 어찌보면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만을 얻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매번 보는 미디어에서 자본을 불리기 위한 일에만 박수를 쳐준다면 이런 메세지를 받고 자란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해서 스스로의 생각을 깨우쳐 나가기 전까지 저같은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늦은 시기에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겠죠.
"무엇인가 빠져있다"
인문학: 단순한 돈을 넘어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그래서 저는 한가지 이벤트로 인문학의 부흥을 기대하기 보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들이 생겨나는것이 진정한 인문학 부흥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이 방향이 맞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텍스트 읽기가 그 자체로써 의미를 가지려면 단순한 읽기를 넘어선 머리와 가슴속에 후기가 남아야 되기 떄문입니다.
이벤트 뒤에 남겨진 후기들은 더 성숙해져서 질문이 되며, 그 질문이 커져야 나만의 인문학을 향한 루트가 완성됩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단순한 사실관계만을 외우는것이 인문학의 공부가 아닌것처럼, 소설, 에세이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울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냥 의미없는 유튜브를 책을 읽는 동안 틀어놓은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거창한 인문학의 부흥보다 생각할 계기들이 피어나는 터전이 되길
그래서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 수상에 대한 별도의 기념회나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한것은 더 의미가 큽니다. 그분에 대해서 어떠한 평도 내릴 수 없었던 저는 그 인터뷰를 보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텍스트에 그려진 의미들을 실제로 느끼고 몸으로 행동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싶은 영광의 순간들을 단순한 화려움의 이미지로 남기 보다는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의미로 바꾸고 행동한다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강 작가님이 본격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으시더라도 더 많은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많이 던져주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SNS에 자기가 책을 샀다고 인증하는 글들 보다 내가 이것을 보고 무엇을 느꼇고 왜 이 책이 의미가 있는지 (혹은 반대의견도 좋습니다) 다양한 토론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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