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업들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산업들만의 특성과 방법들, 그리고 수년간 찾아낸 공식들이 있죠.
엔터계도 그렇습니다. 제가 나름 이런 저런 산업들과 연을 맺으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경험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터계는 정말 신기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공식은 정말 특이해서, 엔터계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의 팬을 만들기: 시작
저도 어릴떄 좋아하던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매주마다 저를 즐겁게 해주는 코메디언과 매우 잘생긴 배우였던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제가 팬덤의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엄청 저랑은 먼 사람이어서 사실상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가 무엇인가를 할만한 꺼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흔한 팬클럽도 없었고, 굿즈도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에 통용되던 비즈니스 모델을 제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작은 팬이었을 것입니다. 팬을 만드는 과정이 투명한지, 혹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팬이 된 이후에 돈으로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디테일한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은 항상 팬이기 때문이죠.
모든 관심의 시작은 미디어였기 때문에 아마도 TV 혹은 영화에 출연하는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팬이 되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환호하고 관심을 표명할 수 있는 정도가 다였던것이죠.
모든 제품에는 팬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사실 어느 비즈니스던 비슷합니다. 비단 아티스트, 혹은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특정 제품을 여전히 [선호]합니다. 과거에는 선호가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선택지가 많지 않았거든요. 그냥 이 기능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나오면 곧바로 팬이 되는 과정이 없이 구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선택에 옵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모든 제품들에 팬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까요. 먹고살만 하니까 그럴수도 있겠죠. 당장의 기능-먹고사니즘-에 모든 전력투구를 해야한다면 우리는 팬이 될 수 없습니다. 싫어도 사야되고 써야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싫은 제품은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사고, 좋아하는것을 봅니다. 그래서 [팬]이라는 말은 단순히 연예인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죠. 우리가 사는 모든 행위중에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는 선택들은 모두 [팬]의 행동입니다.
아이돌을 키우는게 어려울까 제품을 만드는게 어려울까
당연히 아이돌을 키우는게 어렵습니다. 이 업계는 생각보다 투박하고, 돈의 흐름도 선명하지 않고, 전문가도 그렇게 많지 않지만 팬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들어가는 돈은 생각보다 큽니다. 액수가 큰만큼 리스크도 당연히 큽니다. 성공한 아이돌 한명을 만들어서 들어간 돈을 회수하는 과정은 거칠고 확률이 낮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성공하면 대박이 나기도 합니다. BTS가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단어 그대로 매우 극단적인 예일 뿐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돌을 키우는것보다는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난이도가 더 높을 수도 있겠죠. 수백억에서 수천억이 들어가는 제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를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제품들의 리스크가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돌 한명을 제대로 만들려면 백억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데, 실제로 그 돈이 있다면 여기에 투자하실 분들은 많지 않으실 테니까요.
마케팅의 과정: 알리는 과정에서 팬을 만드는 과정으로
인스타나 SNS를 통해서 제품을 알리는 과정들, 미디어 커머스의 발달 과정을 보면서 저는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마케팅의 줄기가 변화하고 있구나 정도로 느꼇죠. 하지만, 오히려 엔터계에 있다보니 생각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모든 제품들을 만들고 마케팅하는 과정은 팬덤을 만드는 과정으로 변해야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실상 우리 모두는 팬덤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광고를 하는 과정에서 셀럽과 연예인들을 활용하여 제품을 알리는 과정도 사실상 그들이 가지고 있는 팬덤의 힘을 빌리는것과 다름 없습니다. 마치 신인 배우가 유명한 배우의 이미지를 빌리는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마케팅 교과서에 쓰여진 다양한 단어들은 이제 팬덤에 기반한 단어들로 일부는 다시 써져야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SNS등의 발달로 인해서 말이죠.
우리는 과거보다 좀더 많은 영향력을 아티스트들에게 끼칠수 있습니다. 의견도 내고 도네이션도 하고, 그들이 가진 생각을 알리면서 말이죠. 그렇게 팬덤은 커지고, 우리의 행동은 바이럴부터 구매까지 모두 마케팅이 됩니다.
크게 뭉쳐진 불확실성에서 선명하게 쪼개진 불확실성으로
앞으로 팬덤들이 가야할 방향은 뭘까요? 아니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람으로써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최근에 일어난 다양한 마케팅 활동들 - 특히 바이럴과 같은 내용들-을 보고 선명함을 느꼇습니다.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무너진 이상 우리를 조종하는것들은 어떤 거대한 미디어 뿐만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보다 작은 영향력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게 맞던 틀리던,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깐 말이죠. 팬덤의 방향은 정답을 말해주는 답안지가 아니거든요.
그냥 흘러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그것을 따라올지 말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이 물줄기가 과거에는 큰 한두개의 방향으로만 보였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수백개, 수천개의 작은 물길을 봐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팬덤이 흐르는 방향이고, 제품이 만들어지는 방향이거든요.
세상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고, 저는 매주 작은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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